+지식인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에, 사회 기반을 위한 축들이다. 지식인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안정적 지표의 역할을 한다. 지표는 그 자체가 가고 있는 방향이자 흐름이 된다. 물이 어디인지 돌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다수 구성원들의 방향을 지표하며, 그리고 돌다리를 건너기 전에 그 돌의 안정성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들이다. 그것은 지식인 본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책임감 이전에, 한 사회에서 그에게 부여하는 역할에 가까운 것이다. 예술가가 이미 강 너머로 아스라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달려가고 있어야 한다면, 방향을 지표하고 있는 것은 지식인들인 셈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건, 그들이 (증오건, 혹은 박찬욱의 표현대로 복수이건) 정치권 인사 개혁 다음의 타겟이 '할 말하는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지식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방망이를 훨씬 직접적으로 맞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방망이의 존재 덕에 나는 지식인이 한 사회의 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지 눈으로 직접 "이해"하게 된 셈이다.
 

+은희경이었을 것이다. 독서가 자산이 되는 시기는 직접적으로 현실과 맞붙으면서였다는 표현을 썼던 이가. 언젠가부터 활자로 가득차 있던 책들이 두 종류로 나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활자인 책, 혹은 활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눈 앞에서, 혹은 이미 등 뒤에서 그들이 말했던 사유의 방식과 툴, 그리고 무기와 방향성들이 되었다. 대학 시절 온갖 레퍼런스들을 뒤져가면서 세미나와 끝나지 않는 토론들을 해도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언어들이, 링겔로 수해받듯이 빨려들면서 몸에 섬세한 세포들과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시점이 되는 경험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동시에, 언어가 언어 그 자체로서 더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활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했다. 사유는 사유와 붙다가, 사유가 활자를 만나서 툴로 변환하기도 하며 시간과 경험으로 붙어 삶이라는 덩어리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고, 그 폭들은 조금 퇴색되기도 혹은 더 예민한 형태로 다채로워지기도 했다. 활자들이 현실과 붙어나가는 것들은 개인적이기도, 사회적이기도 했다. 그 자체로 개인의 삶이자, 역사이기도 했다.

활자들과 사유의 틀들이 배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배치는 수학이다. 누구였더라, 자신의 언어는 99%가 타인의 언어라고. 활자를 배치로만 이해하기에 철저히 자신의 언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언어적 천재이거나, 게으른 삶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활자를 대하는 태도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삶과 몸 그 자체로 유산되는 언어들이 있으며, 활자 그 자체 내의 배치적 세계가 존재하며, 활자들을 삶으로 전환시키는 지독히도 성실한 삶들이 있다.

삶에서 유산되는 언어들은, 이미 해야 할 말이 정해져있는 이들이 기성화된 언어들을 빌어내건, 새로운 언어건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며, 이것은 예술가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활자 그 자체 내의 배치적 세계만이 존재하는 이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엘리트들이 하고 있는 수학적 계산이다. 이들은 김병익의 표현을 빌어오자면,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이 "평면적"이다. 삶과 사회, 역사는 입체이고 2차원 이상이기 때문에 이 도식적 평면들과 맞붙었을 때 평면성의 협소한 인식의 틀부터 깨져가며 그 폭이 다른 형태로 전환할 수 밖에 없다. 활자들을 삶으로 전환시키는 지독히도 성실하고 실천적인 삶은 삶 자체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언어들을 재-생산시킨다.

배치란, 이 세 가지 태도가 모두 혼재될 때 가능하다. 예술의 Originality이건, 한 개인, 혹은 사회가 "현재 앞의 시간"을 가는데 필요한 방향의 지표는 이 혼재의 재요리 위에서 최소한의 자양분을 가진 채 태어날 수 있다.



 

칼날.

Note 2009/06/16 18:28

+칼날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의 칼날같은 상처가 전이되었다. 몸이 베인 듯한 기분이다.

+이택광 교수의 라깡 독회를 다니고 있다. 정신분석의 네가지 개념을 읽고 있는데, 무의식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라깡은 말한다. 우울증이란 낫는 것 같더라도 계속 어떤 방식으로건 신체적 징후로라도 남기에, 애초부터 낫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비관적이다. 이런 인식론은 삶이 그저 깨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노라고 말하는 것 같다. 상흔은 사라지고 퇴색되며 기억은 재조작기도 한다. 그렇다면 흉터는 파편이 되어 둥둥 떠다니게 되나. 뭐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개인적인 상흔을 비추는 거울로서 작업을 바라볼 때면, 그 작업이 한 개인에게 절름발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건의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상흔이 되면 그것은 하나의 징후로 남는다. <여교수의 은밀한 사생활>이란 영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여 교수의 절뚝거림을 징후로 남겼다. 영화 초반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그 절뚝거림이 그녀를 더 섹시하게 만든다고. 영화 <인터뷰>에선 남자가 매력적으로 보일 땐 "scar"라지 않던가. 섹시한 무의식의 흉터. 이 두 코드를 설명하기엔 베이컨의 작업이 쉬울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한국 사회는 칼날 같은 노무현의 추락으로 섹시해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읽기 꽤 무섭다. 후기구조주의는 예술작품을 설명하기에 위험하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고,(섹시해서 그럴까?) 어떻게 보면 쉬운 분석 틀이다. 솔직히, 인간이 무의식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이 되도록 생겨먹었기에 무의식일텐데 굳이 칼날을 들이대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최근 분명한 학문적 목표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현실적 진로가 명확하지 않다. 걸림돌은 작업, 시간이나 용이함 그런 것들이다. 책을 내는 것도 방법인데,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럴 때면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편이 편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블로그를 이전할까 생각 중이다. 조용하고 편해서 좋기는 한데, 호스팅의 압박 때문에 고민 중이다.


그 외.

+내가 지지부진하게 길게 쓴 걸, 박찬욱이 간단하게 쓴 걸 읽었다. 그 사람들(뉴라이트 인사들) 진보, 아방가르드 개념과 좌파를 혼동하는 거 아니냐고. 대안공간 시스템 전반도 빨갱이로 지목하고 있다던데, 현재 문화 예술계에서 빨갱이로 지목된 타겟은 그렇게 설명하면 된다. 요즘 독재인가 아닌가 논쟁이 돌던데, 소리없이 조용하게 움직여서 그렇지, 독재인 건 맞다. 앞으로 남은 정권 3년 이내에 사람이 더 죽어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피부 수칙.

Note 2009/06/14 10:15

문화 예술계가 현 정권에 대응하는 방법엔, 피부 관리 수칙이 필요하다.

-막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대한 늦추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710472&hisBbsId=total&pageIndex=2&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70725173608218&p=newsis

-
아고라 뒤적이다가 이런 글을 봤다. 대운하에 목숨걸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부동산. 대운하 파려는 이유를 청계천 만들려는 이유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허탈해진다. 하긴, 청계천도 대선 노리고 진행시킨 것이긴 하지. 욕망에 지독히도 충실하긴 하다.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정주영 아저씨란 말도 있던데. 서울시 곳곳 나붙은 재개발 문제를 보면 관련되어 있는 삼성이고.

촛불 인디포럼에 다녀올 때, 발제자들이 계속 그 질문을 했었다. 도대체 촛불이 왜 용산에는 오지 않았을까-.

촛불을 기억해보면, 촛불은 민족주의의 발현이 시작이었다. 기존 운동권이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걸던 세대라면, 촛불은 민족주의의 정서에서 시작되었다. 반미 정서를 자극했던 미선이 효순이 사건, 붉은 악마에서 촛불이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아에 열광하는 이유도, 한국 야구가 보기 드문 성적을 거두었을 때, 깃발 꽂고 오는 신에 열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드물게 반드시 가져야 할 사회적 인식으로 각인되어 있는 절대적 선이다.

내 자식에게, 혹은 군에 가 있는 내 남자친구에게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은,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으려는 최대한의 상상력의 범위. 내 여자친구가 혹은, 내 딸이 누군가에 의해서 강간당하는 폭력으로서 인식하는 방식과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용산 사태는 용산 철거민 VS 재개발 정권과 삼성 건설이었다. 노동문제이지, 민족주의를 자극하지 않는다. 게다가 삼성은, 한국 사람들의 욕망의 기표아니던가. 당시 이태원 어떤 술자리에서 한 사람은 용산 참사에 대해서 욕망의 충돌이라고 표현했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낭만적인 표현이자, 현실적인 표현이다. 상대적 기준에서 가난하다고 볼만한 노동자들 조차도 노동자들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동과 진보는 그저, 엘리트들을 위한 이상주의 사회일지도. 운동권의 욕망이 세대 교체를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세대는 비민주화 세대라는 것에 대한 경험이 직접적이진 않았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낙선이 이미 입증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어디 서있는가에 대한 기표가 아니다. 욕망의 방향성과,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성의 기표의 문제이다. 방향성이란, 의지에 따라 3초면 고개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며 20대를 동정했던 우석훈에게 한 20대 블로거가 거침없이 쏟아냈던 한 문장이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동정어린 현실 인식이 아니라, 한 알의 달콤한 마취제라고. 적어도, 같은 20대로서 짱돌을 들라던 우석훈의 말보다는 불안 앞에서 더 절절한 호소력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가 힘을 발현하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지금 시대에 민주화라는 것, 투쟁이라는 것. 마취제 한 알보다 얼마만큼이나 필연적으로 인식하고 힘을 갖고 움직일 수 있을까. 회의적이고, 무력하다.

촛불이 서울광장에 모인다는 말을 듣자마자, "탄핵" 때 학습한 적이 있는, 보수세력들, 그 날로 결집해서 마치 같이 협공하듯이 반정권적 노선으로 돌아섰다는 뉴스가 떴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들의 원칙이건 뭐건, 어디든 쳐넣어 놔도 상관없이 뭐든 다 하는 "권력을 쥔" 아귀들이다. 이런 인간들 보면 차라리 박근혜가 낫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알게 된다. 저런 인간들을 상대로 무기력해지지 말아야,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언제 한 번은 이글루에서 그런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유도하는 정치적인 전략이라고. 이명박이 대선에 당선된 과정이기도 했다.


+요즘 생각이 많아져서 글이라도 잔뜩 써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둔화시키려고 그리 노력했는데, 사건이 많아지면서 다시 예민해졌다. 체력이 저하될 때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도 싫고, 한 번 앓고난 후 건강 염려증 따위도 생겼다. 이 블로그로 이사온 가장 큰 이유가 사회 정치 포스팅을 최소화하자였더랬다. 그에 대해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애정어린 조언이란, 뉴스 보지 마라-다. 그런데 정말로, 너무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번 호 씨네 21보면 전부 정치얘기 밖에 없어서 영화 좋아하는 내 친구는 정치 얘기밖에 없다고 투덜대던데, 민주화 담론이나 시국성명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당장의 자기 소리를 내도 밥그릇 다 뺏기게 생긴 미술계는 현 상황에 대한 담론들로 도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지독히도 미학적이고 평화롭게 침묵하신다. 박정희 정권 1979년까지, 아파트에 걸리면 잘 어울릴 그림을 그려주며, 예술과 정치가 아무 관계 없는 척하던 모더니티의 중립적인 척하던 태도를 기억해보면 역사가 30년 만에 그대로 반복되는 꼴이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이 무력하고 패배적인 침묵들이 전염성을 띈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개인의 발전을 방해한다면, 국가는 영원히 개인에게 빚을 진 것이다"
이 멋진 말을 한 인간이 이명박이란다. 지금 미술계가 그대로 돌려줘도 될 표현이다.




상상력에 자유를! -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




서명운동이라.

지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남은 3년동안 서울 시내 미술관과 미술대학 다 사라지지 않을까 했습니다. 미술계는 지금 가장 급박하게 움직여야 할 곳이었는데 말이죠. 여기저기 싸울 일이 산재하군요.


인미공. 아르코. 한예종. 이 정권 들어서고, "진보"와 "전위"란 무슨 뜻인가를 현실적으로 실감할 만 합니다.

박쥐

Note 2009/05/02 22:44
+누가 이 영화에서 쓴 패러디 일독을 정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 웬만한 영화광이 아니면 할 수 없을 듯 하다만. 장르를 나누자면 영화들을 조합해서 만든 치정 멜로(를 가장한 코메디) 인 듯 한데, 영화 매니아가 아닌 내가 확실하게 보고 알 수 있는 영화는 대여섯 편 정도. 대강 장면 패러디로 쓰였을 영화라고 짐작되는 것만도 최소한 열 편 정도. 이를테면, 김기덕의 "섬"에선 제대로 폭소. 영화 스토리 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섬의 패러디. 장면마다 매번 아는 이들은 웃고, 모르는 이들은 소리치거나 심지어 울고...영화관 내 분위기 자체가 코메디였다. -_-

+감독이 관객을 놀리는 내공이 더 높아지고 매니악해졌다.

+패러디 장면이 많아서, 스토리에 집중이 잘 안됬다. 패러디 영화들이 아무래도 그렇다. 다수 대중을 "이런 영화광들을 위한 영화"에 잔뜩 끌어모은 박찬욱은, 성격 이상한 괴짜던가, 그저 영화광이던가, 혹은 둘 다던가. 영화인들에게는 참 정치적으로 필요한 감독이다. 만화가도, 이런 지점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욕망과 금기에 관한 설정 빼곤 모두 코메디와 영화적 실험성. (씨네 21 평에서의) 철학적 상징성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보단, 영화적 상징성과 이미지, 기술적 실험성의 집합 매니아 영화.

+패러디의 조합 외에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기억에 관한 "심리적 효과"를 표현한 기술 효과. 그 점조차도, 참 영화사적이더라. 그리고 이 정도 장인정신이면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교재로 써도 될 것 같았다.

+원작이 있다는데, 원작을 보면 또 보는 감상이 달라질 듯 하다만. 이미지의 조합을 조잡하지 않고 세련되게 풀어냈다. (그러고보니, 박찬욱의 이미지 조합이 특유의 키치적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었다고 느낀 건, 이번이 최초인 듯.)

+박찬욱식 유머는. 자학적이다. 뭔가 있을 듯- 힘 잔뜩 주고 터뜨려보면, 아무 것도 없다.
매번 이런 식. 또한 진중하지만 하나도 진중하지 않는 유머.


+"놀랍게도" 대중들은 매번 그에게 놀림당하면서도, 또 보러간다. 이번엔 놀림 당하는지도 모르지 않을까. 어쨌건 이번엔, 김옥빈이 벗은 탓. 박찬욱의 영리함은, 언론 플레이와 특유의 "뭔가 있을 듯"한 폼의 결합이다. 그가 홍상수나 김기덕과 달리, 대중과 영합하는 유일한 지점. 박찬욱이 놀리려는 코드가, 대중들이 "예민한" 지점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

+이것보다 "덜 예술적인건 둘째치고, "덜 매니악한 영화"들에는 항상 영화관이 텅텅 비어있던데.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철학적/예술적 주제도 아닌, 그저 이런 매니악하면서, 대중 놀리는 걸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대중들이 매번 찾는 이유가 뭔가. 벌써 40만이라니, 한국 대중도 자학적인 것이 틀림없다.

<비평의 지평>외.

Note 2009/04/01 06:45

+말이란. 아무리 아무리 소진시켜도, 그 소진의 끝은 언제나 도달해보면, 또다른 문이 앞에 있다. 그 곳에선, 또다른 말의 샘이 솟아난다. 가끔은. 성장통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마냥 놀던 끄적거림들이, 도저히 넘쳐나는 것들을 막을 수가 없어서 마구잡이로 쏟아냈던 것에, 시간이 흘러 부분부분들이 붉어지지 않았던 점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어떤 종류의 소통의 욕구가 남아있는 셈이다.

+뾰족한 만년필 끝 같던 유시민이 너털하게 웃으면서 책장사하겠다며 돌아왔다. 섹시한 어준씨와의 대담을 보면서, 세상은 여전히 유쾌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해보니, 우울함이 잠시 사라진다. (섹시한 어준씨는 몸의 털들 조금만 다듬으시고, 티비 토크쇼나 진행하셨음 좋겠다.) 유시민 아저씨의 인터뷰에 이런 부분이 있더라. (한나라당을 지칭하며) "그 분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을 어떻게 견디셨나 모르겠습니다." 이 아저씨, 백수로 살더니 상당히 사랑스러워져서 돌아오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235&CMPT_CD=P0000


+김점선이 자서전을 내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할 말을 다 한 아티스트는 삶에 더 이상 어떤 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따지면, 말의 욕구가 남아있는 한, 죽지는 않겠네. 덧붙여, 나는 올해 아주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빨리" 만나야 한다는 것. 박이소가 그랬다. 삶의 속도는 물체가 낙하하는 속도만큼 빠르다고. 그러니, 그 속도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원하는 건 두두둑 다 사라지는 것이다. 올 초 가장 만나고 싶던 아티스트가 김점선 선생님과 김범 선생님이었다. 부디 올해 내에 김범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최근에 구경갔던 전시로는 <비평의 지평> 전, <박미나+잭슨 홍> 전, 통의동 브레인 팩토리, 정도.

+<비평의 지평>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 말을 다 읽어야, 이 사람들의 작업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아니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있는 머리전시. 결국 도록을 사야 했다. 도록을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첫번째 투덜거림은, 이런 "엘리티시즘".

미술을 알아야 하는 평론가들은 물론, 미술"계"를 알아야 하게 만드는 평론가까지. 처음부터 추리게임을 시작해야 하던, 입성이었다. 이를테면, 이정우의 작업에선, 그가 수건을 매번 두르고 다닌다는 사실을 아는 미술판 사람이 그 수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평론가들 너희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보자"고 벼르고 놀러갔던 나로선, 그런 상황을 갖고 노는 작업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이렇게 성실할 수가!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전시를 구경갔기 때문에, 신문 인터뷰를 보고 웃다가 조금 실망했버렸다.)

+머리를 가장 아프게 했던 평론가로, 유진상을 꼽겠다. 장문의 대여섯페이지는 되는 글을 두번을 읽고 나서야,(스타블라스 논문까지 읽어야 했다. 왜 그토록 불친절...이런 글은 대체 어찌 불러야 하나. 환유? 은유? 미끄러지기? 모른다. 나는.) 도대체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작업은, 심상용의 <비평가의 영혼>, 그리고, 최금수의 <내용과 형식의 교란을 노리는 장치들>.

심상용의 <비평가의 영혼>과 반이정의 <소통에 실패한 3편의 회신> -이 두 작업이  '비평가'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전시맥락 상 눈에 제일 먼저 띄였다.  비슷한 맥락으로 장동광 큐레이터가 걸어온 컬렉션들도, 일종의 "역사전" 성격을 부여한 점이 전시의 텍스트를 강화시킨 점도 좋았다. 사실은, 그런 식으로 현재를 "정리"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랬다.

최금수의 <내용과 형식의 교란을 노리는 장치들>과, 유진상의 <개에게 던져줘>는. (그런 의도였는지 아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쩄건 두 작업은 본질적으로는 하고 싶은 말은 비슷해보이는데, 두 작업 모두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고 지켜보지 않는 것"에 대한 작업이라서,장소가 동아일보 건물인 일민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좀 더 재밌었을 것이다. 최금수의 작업은 개념적으로 "형식주의적"인 정치(혹은 민중)미술인가. 음. 작업들마다 이런 수식어 두세개씩 붙이는 것이 가능할지도. 어쩄건, 이 전시 장소에서 본 전시 중에서, 이렇게 장소 특징적인 작업을 보는 건 "오히려" 처음이었을지도.

전시 자체는 어떤 특정 성향에 치우치지 않은 채 골고루 배분된 듯 했다. 균형잡힌 요리처럼 특별히 어떤 편중 없이, 이것저것 유연하되, 지저분하지는 않게, 여기저기 이름을 아는 작가진들이 공들여 도와준 것들이 눈에 띄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 인상 덕에, 오랜만에 보는 볼거리가 고루고루 상당히 풍요로운 전시였긴 했으나, 말이 많은 것-외에, 역시 "큐레이터"나 '비평가'들, 즉 미술 관계자들이 할 수 있을만한 전시 다웠으면 하는 색채가 조금 더 짙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아마,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특별히 어떤 규제자체를 처음부터 안 둔 것 같았다만. 몇몇 평론가들은 이 일민 미술관 동아 미술제에서 심사위원 같은 것도 전에 하곤 했으니깐.


사진과 사격.

Note 2008/10/24 02:04


+사진을 찍는 건, 사격과 비슷하다.
목표를 기다리고, 목표물을 정확히 타이밍에 맞춰서 잡는다. 
 
+한국 남자들이 유독 사진에 집착하는 것이 활쏘기 근성 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상상을 문득 해보았다. 군대에서 잡았던 총 대신이랄까.
 

+
사진이랑 그림이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사진 이미지의 많은 원리가 미술과 분리될 수 없지만, (이를테면, 레이어가 여러겹인 사진을 만들 때, 미술사 바탕이 도움이 된다.) 매체를 다룰 때 필요한 어떤 특질은 아주 다른 것 같다.

분명 좋은 눈이 필요하긴 하다만, 그림은 어쨌건 그걸 곰탕끓이듯 끓여서 스튜디오에서 내면화하는 부분이 크다면.

(준비하고) 보고 정확히 사격하고 순간적으로 남기는 것이 사진의 특성.
마치, 현대의 사진기란, 활과 총의 사회적 후예 같다.

디카가 더 그런 면도 있기는 하다만. 매체 특징으로 좀 더 비슷한 예술을 잡으라면, 음악과 더 비슷한 것 같다. 순간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음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집중력과, 잡아내는 능력이 더 중시되는. 그걸 언어로 잡아내서 구조화하면, 시가 되겠지. 하지만, 음이나 언어는 매체 자체로 구조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지녔다면, 사진은 성격 자체가, 직접적이며 공격적이다. 이렇게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매체는 사진이 처음인 것 같다. 의외로 페인팅은, 소리보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매체지만, (self-) 내면적인 매체랄까. 적절한 단어가..음. 뭐랄까, 타세계의 개입의 여지도 없는만큼, 공격성도 없다. 개인주의적인 매체?
 
그나저나 예술은 팔수록 다들 비스무레하다.

원의 원리

Note 2008/10/21 20:04

+
만약, 창작자를 "먹고-input, 비워내는-output" 사람이라 한다면,


+
하나의 방향성이 있는 Output을 "선"으로 규정할 때.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을 방향으로 컨셉을 잡건,
단순히 어떤 시각적 이미지가 맘에 들어 드로잉을 시작하건,
그 결과물들을 작은 선이라고 본다면.

+
이 선들이 원을 그리는 장대가 된다.

계속해서 한 선만 따라 그려도, 원을 그리게 되기도 할텐데, 이런 종류의 작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선의 길이는 사람, 시기, 작업양마다, 다르다.

보통 다른 작가들은 조금 긴 선을, 몇 개 그려서 장대를 완성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선이, 다른 작가들이나, 학교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길이와 양이 짧고, 많다. 짧은 선을 여럿 뱉어 선들을 이어서 조합해가면, 사선으로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계단식의 모양이 된다. 무작위적인 짧은 선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긴 선이 되어 있는 셈. in and out의 반복들이, 하나의 그 나름의 선을 그려놓고 있다

그 선들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얘네가 돌아서 하나의 작은 원이 완성되는데,
이 원의 크기는 시간과 작업량, 그리고 인풋의 질과 대체로 비례한다.

작은 원의 원리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무작위적인 작은 원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 같지만, 한바퀴 돌아서, 원들이 합쳐져 거대한 원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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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한바퀴 돌아서 다시 원점에 돌아왔을 때, 작업이 발전했다면, 원의 크기가 커진다.

트렌드와 일관성.

미술판에서는 “흐름”이라고 말하는 소위.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 요즘 잘나가는 담론이라는 것이 있고, 요즘 잘나가는 종류의 작업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 선호되는 작업들이 있고, 요즘 큐레이터들이 선호하는 것들이 있다. 대체로 굵직하다는 작가들은 이 트렌드를 캐치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빠르고, 앞서서 내놓는다. 문제는 속도 싸움이다. 말만 많을 뿐이지, 스타일이 시기마다 바뀌는 패션계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장인 정신이니, 진정성이니 하는 단어들이 아니다. 어쩌면 진짜로 필요한 것은 저 수많은 단어들과 정치적 Context들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Trend를 잡아내는 예민한 직관력과, 그 틈새를 파고들 줄 아는 정치적 영리함,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기동력, 그리고 기회주의적 속성이다.

매번, 지겨울 정도로 의문을 품게 된다. 운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건 작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고 할 지라도. 과연 작가의 “Originality”라고 하는 것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고. 과연, 최신 담론, 선호되는 유행을 일시적으로 따르지 않고 수 십 년을 한 길만 파면서 진정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 진정한 Creative에 관한 일관성과 인내심들. 그런 정신의 힘은 책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하고. 한국 미술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만의 Creative에 관한 최소한의 프라이드를 기회주의와 트렌드 앞에서 내동댕이 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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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smanship과 사라져가는 미디어 아트.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

나는 작가치고 장인정신이 많이 모자란 편이다. 장인 정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물체, 물질 자체에 관한 애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전제할 때, 그 애정이라는 것이 도저히 하루 아침에 생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내가 애정을 열렬히 쏟아 부었던 매체는, 처음부터 회화가 아닌 만화였다. 수 십 년의 history와 애정을 가진 만화매체와 달리, 미술이라는 걸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는 나로선, 특별한 형식주의적 매력을 설치건, 회화건 다른 형식들에게서 만화만큼 크게 느끼지 못하면서 이 장인정신에 관한 상대적 결여가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비엔날레 두 군데를 돌면서, 거품이 많이 빠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무 살 때, 미디어 아트가 보여주던 시각적 스펙터클이 빠진 지야 꽤 되었지만, 점점 인터랙티브니, 형식주의적 작업들의 폭이 줄어들면서, 최근에는 나를 현대미술로 인도했던 미디어 아트가 급기야 판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어느 분야에서든, 영화건, 만화건, 회화건, 디자인이건 간에, 형식. 그리고 매체에 관한 Modernity적 애정은, 매체의 존립과 직결되어 있다. 비록 후배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 마련이었을지라도, 그 정신과 애정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매체에 관한 Modernity 적 기반 없이는 매체 자체가 존재하기가 힘들다. Modernity의 태생 자체가 매체에 관한 존립을 위한 애정에서 기반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인들이 가진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Creative의 기본 정신 아니던가. 이론, 평론에게도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애정이자, 매체와 형식에 관한 최소한 갖고 있어야 하는 책임감이다. 매체, 그 자체에 관한 애정 말이다.

미술판에 폭풍처럼 들이닥친, 이제는 조금 지겨울 정도로 거센 담론과 정치적 여파 외에,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감지되던 흐름 하나는, 미시적 감수성과 이야기의 부활이다. 즉, 전시를 보고 나면 마치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나서게 된다. 문학적. 즉, 은유적이고, 미시적이며 섬세한 감수성. 형식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아도, 압축된 상징의 세련미. 그리고, 스펙타클과 거대한 폼 앞에서 사라졌던 “이야기” Narrative의 부활. 대체로 형식적으로도, 주제나 소재도 미시적이며 압축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과 작업들이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이 현대미술 형식주의의 가장 한 주류였던 미디어 아트의 쇠퇴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형식들, 형식 그 자체의 미학으로 존립하다가 사라져가는 것들, 그 자리가 점점 줄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