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Note 2009/06/16 18:28

+칼날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의 칼날같은 상처가 전이되었다. 몸이 베인 듯한 기분이다.

+이택광 교수의 라깡 독회를 다니고 있다. 정신분석의 네가지 개념을 읽고 있는데, 무의식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라깡은 말한다. 우울증이란 낫는 것 같더라도 계속 어떤 방식으로건 신체적 징후로라도 남기에, 애초부터 낫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비관적이다. 이런 인식론은 삶이 그저 깨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노라고 말하는 것 같다. 상흔은 사라지고 퇴색되며 기억은 재조작기도 한다. 그렇다면 흉터는 파편이 되어 둥둥 떠다니게 되나. 뭐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개인적인 상흔을 비추는 거울로서 작업을 바라볼 때면, 그 작업이 한 개인에게 절름발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건의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상흔이 되면 그것은 하나의 징후로 남는다. <여교수의 은밀한 사생활>이란 영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여 교수의 절뚝거림을 징후로 남겼다. 영화 초반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그 절뚝거림이 그녀를 더 섹시하게 만든다고. 영화 <인터뷰>에선 남자가 매력적으로 보일 땐 "scar"라지 않던가. 섹시한 무의식의 흉터. 이 두 코드를 설명하기엔 베이컨의 작업이 쉬울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한국 사회는 칼날 같은 노무현의 추락으로 섹시해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읽기 꽤 무섭다. 후기구조주의는 예술작품을 설명하기에 위험하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고,(섹시해서 그럴까?) 어떻게 보면 쉬운 분석 틀이다. 솔직히, 인간이 무의식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이 되도록 생겨먹었기에 무의식일텐데 굳이 칼날을 들이대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최근 분명한 학문적 목표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현실적 진로가 명확하지 않다. 걸림돌은 작업, 시간이나 용이함 그런 것들이다. 책을 내는 것도 방법인데,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럴 때면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편이 편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블로그를 이전할까 생각 중이다. 조용하고 편해서 좋기는 한데, 호스팅의 압박 때문에 고민 중이다.


그 외.

+내가 지지부진하게 길게 쓴 걸, 박찬욱이 간단하게 쓴 걸 읽었다. 그 사람들(뉴라이트 인사들) 진보, 아방가르드 개념과 좌파를 혼동하는 거 아니냐고. 대안공간 시스템 전반도 빨갱이로 지목하고 있다던데, 현재 문화 예술계에서 빨갱이로 지목된 타겟은 그렇게 설명하면 된다. 요즘 독재인가 아닌가 논쟁이 돌던데, 소리없이 조용하게 움직여서 그렇지, 독재인 건 맞다. 앞으로 남은 정권 3년 이내에 사람이 더 죽어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피부 수칙.

Note 2009/06/14 10:15

문화 예술계가 현 정권에 대응하는 방법엔, 피부 관리 수칙이 필요하다.

-막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대한 늦추거나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