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710472&hisBbsId=total&pageIndex=2&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70725173608218&p=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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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뒤적이다가 이런 글을 봤다. 대운하에 목숨걸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부동산. 대운하 파려는 이유를 청계천 만들려는 이유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허탈해진다. 하긴, 청계천도 대선 노리고 진행시킨 것이긴 하지. 욕망에 지독히도 충실하긴 하다.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정주영 아저씨란 말도 있던데. 서울시 곳곳 나붙은 재개발 문제를 보면 관련되어 있는 삼성이고.
촛불 인디포럼에 다녀올 때, 발제자들이 계속 그 질문을 했었다. 도대체 촛불이 왜 용산에는 오지 않았을까-.
촛불을 기억해보면, 촛불은 민족주의의 발현이 시작이었다. 기존 운동권이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걸던 세대라면, 촛불은 민족주의의 정서에서 시작되었다. 반미 정서를 자극했던 미선이 효순이 사건, 붉은 악마에서 촛불이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아에 열광하는 이유도, 한국 야구가 보기 드문 성적을 거두었을 때, 깃발 꽂고 오는 신에 열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드물게 반드시 가져야 할 사회적 인식으로 각인되어 있는 절대적 선이다.
내 자식에게, 혹은 군에 가 있는 내 남자친구에게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은,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으려는 최대한의 상상력의 범위. 내 여자친구가 혹은, 내 딸이 누군가에 의해서 강간당하는 폭력으로서 인식하는 방식과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용산 사태는 용산 철거민 VS 재개발 정권과 삼성 건설이었다. 노동문제이지, 민족주의를 자극하지 않는다. 게다가 삼성은, 한국 사람들의 욕망의 기표아니던가. 당시 이태원 어떤 술자리에서 한 사람은 용산 참사에 대해서 욕망의 충돌이라고 표현했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낭만적인 표현이자, 현실적인 표현이다. 상대적 기준에서 가난하다고 볼만한 노동자들 조차도 노동자들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동과 진보는 그저, 엘리트들을 위한 이상주의 사회일지도. 운동권의 욕망이 세대 교체를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세대는 비민주화 세대라는 것에 대한 경험이 직접적이진 않았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낙선이 이미 입증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어디 서있는가에 대한 기표가 아니다. 욕망의 방향성과,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성의 기표의 문제이다. 방향성이란, 의지에 따라 3초면 고개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며 20대를 동정했던 우석훈에게 한 20대 블로거가 거침없이 쏟아냈던 한 문장이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동정어린 현실 인식이 아니라, 한 알의 달콤한 마취제라고. 적어도, 같은 20대로서 짱돌을 들라던 우석훈의 말보다는 불안 앞에서 더 절절한 호소력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가 힘을 발현하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지금 시대에 민주화라는 것, 투쟁이라는 것. 마취제 한 알보다 얼마만큼이나 필연적으로 인식하고 힘을 갖고 움직일 수 있을까. 회의적이고, 무력하다.
촛불이 서울광장에 모인다는 말을 듣자마자, "탄핵" 때 학습한 적이 있는, 보수세력들, 그 날로 결집해서 마치 같이 협공하듯이 반정권적 노선으로 돌아섰다는 뉴스가 떴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들의 원칙이건 뭐건, 어디든 쳐넣어 놔도 상관없이 뭐든 다 하는 "권력을 쥔" 아귀들이다. 이런 인간들 보면 차라리 박근혜가 낫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알게 된다. 저런 인간들을 상대로 무기력해지지 말아야,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언제 한 번은 이글루에서 그런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유도하는 정치적인 전략이라고. 이명박이 대선에 당선된 과정이기도 했다.
+요즘 생각이 많아져서 글이라도 잔뜩 써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둔화시키려고 그리 노력했는데, 사건이 많아지면서 다시 예민해졌다. 체력이 저하될 때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도 싫고, 한 번 앓고난 후 건강 염려증 따위도 생겼다. 이 블로그로 이사온 가장 큰 이유가 사회 정치 포스팅을 최소화하자였더랬다. 그에 대해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애정어린 조언이란, 뉴스 보지 마라-다. 그런데 정말로, 너무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번 호 씨네 21보면 전부 정치얘기 밖에 없어서 영화 좋아하는 내 친구는 정치 얘기밖에 없다고 투덜대던데, 민주화 담론이나 시국성명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당장의 자기 소리를 내도 밥그릇 다 뺏기게 생긴 미술계는 현 상황에 대한 담론들로 도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지독히도 미학적이고 평화롭게 침묵하신다. 박정희 정권 1979년까지, 아파트에 걸리면 잘 어울릴 그림을 그려주며, 예술과 정치가 아무 관계 없는 척하던 모더니티의 중립적인 척하던 태도를 기억해보면 역사가 30년 만에 그대로 반복되는 꼴이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이 무력하고 패배적인 침묵들이 전염성을 띈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개인의 발전을 방해한다면, 국가는 영원히 개인에게 빚을 진 것이다"
이 멋진 말을 한 인간이 이명박이란다. 지금 미술계가 그대로 돌려줘도 될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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